나홀로 동방역 여행중 스산함 속에 공존하는 쓸쓸한 첫인상

이번 여행은 자동차로 동방역을 향해 혼자만의 탐방을 위해 나섰는데,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 폐역들을 조용히 답사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을 따라 경주시 동방동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혼자 나서게 된 이유는 이전에 가족과 함께 폐 불국사역을 탐방할 때는 동방역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렸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동방역이 폐 불국사역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역사는 ‘OO루’라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가는 길 사이에, 숲에 가려진 채로 숨어 있었습니다.

폐역된 동방역 주변에는 흙으로 된 공터가 주차장처럼 되어 있었는데, 이전 답사해 보았던 폐역과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들이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마을 주민들인지 땅 주인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채소를 열심히 키운 흔적이 있는 밭이 보였습니다. 폐역사 앞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역 이름이 적힌 간판조차 보이지 않았고 도로에서 차로 이동하는데 작은 표지판 하나 없었기에, 처음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그냥 오래된 건물로 착각하고 지나쳐 버릴 만했습니다.

나홀로 여행중 스산함 속에 공존하는 동방역의 쓸쓸한 첫인상

출처: 폐역이된 동방역 입구 사진-직접 촬영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 안내를 종료합니다”라고 했지만, 저는 아무리 봐도 우측 길이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문제는 다시 되돌아오려면 한참을 올라가서 유턴을 해야 했기에, 혹시 방문할 생각이 있다면 미리 참고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시 유턴해서 ‘오른쪽에 목적지가 있다’는 말에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오른쪽을 보니, 세상에, 역은 나무에 가려져 있었고 길은 소방도로 정도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이 옛날에 역 앞 도로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데, 오르막이 있어 위를 보니 이전 답사에서 보아왔던 역 건물 양식이 비슷한 건물이 보여서 ‘아, 여기가 역이구나’라고 알았습니다.

나홀로 탐방 동방역의 복잡한 역사

혼자 폐역을 가보는 것은 가끔 무서울 때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폐역이된 불국사역이 그랬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의 목적으로 와이프와 함께 간 폐역사였는데, 해가 떠 있는 밝은 날이었습니다만 햇빛이 들어오는 역사 주변은 아이들과 와이프도 같이 둘러보고 사진 찍고, 주변에서 놀고 하였는데,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고나 집, 우거진 나무 사이에 있는 막사 같은 곳은 애들이 무서워해서 저 혼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홀로 탐방 동방역의 복잡한 역사

출처: 폐역이된 동방역의 싸늘함-직접 촬영

마찬가지로 혼자 간 동방역의 모습은 두 번의 폐지 과정과 현재의 모습이 이 역의 복잡한 운명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역 안을 들여다보니 얼마나 오랜 세월 버티고 있었는지, 쓸쓸함보다는 으스스한 기운과 거미줄, 꼭 애니메이션 아담스 패밀리 집 같은 싸늘함이 들어 솔직히 더 이상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폐역이 된 이 동방역이 처음 영업한 것이 1919년이라고 검색에 나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이 역도 구 아화역이나 구 안강역, 건천역사처럼 현재 백 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이 역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방동 폐역이된 동방역 재탐방

동방역을 처음 지나쳤던 것은 어쩌면 이 역의 존재감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비게이션에는 분명 동방역이라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동방역(폐역)”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처럼 폐역을 탐방하거나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면 거대한 고층 아파트 단지와 좁은 소방도로 언덕위에 위치한 동방역을 선뜻 ‘역’이라고 인지하기 어려웠습니다.

폐역이 된 곳이 대도시의 변두리나 산골이 아닌, 현대적인 주거 공간 바로 옆에 숨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위화감을 주었는데 이번에 다시 차를 돌려 이곳을 찾은 것은 단순히 궁금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고 잊힌 시간과 역사를 알아보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학교에서 벌써 PPT를 만들어 발표하는 수업을 하더군요. 그래서 예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매주 금요일은 PPT 발표하는 날로 정했었는데 저는 저대로,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개인이 원하는 주제를 정해서 빔프로젝트를 펼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이처럼 폐역 같은 것도 역사와 깊이를 담아 발표해 주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을까 싶어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동방역 폐철로위 우거진 나무와 잡초뒤에 보이는 현대식 아파트

출처: 폐철로위 우거진 나무뒤 아파트 풍경-직접 촬영

두 번의 폐지와 신호장의 쓸쓸한 운명

동방역의 역사를 검색해 보니 이 역은 1919년 1월 14일 도지역으로 개업한 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폐지의 과정을 거쳤더라구요. 1차 폐지는 1977년 2월 28일이었고, 이후 신호장으로 운영되다가 2차 폐지는 2021년 12월 28일이었습니다(위키백과 참고).

이 역 역시 불국사역과 마찬가지로 동해선 고속화와 함께 폐지 수순을 밟았다고 하는데, 동방역은 일반 여객역이라기보다는 화물 취급이나 단순 신호장 역할을 주로 했었으니, 승객보다는 열차의 운행 관리가 주 목적이었던 곳이라는 겁니다.

즉, 다른 기차가 오면 선로가 하나라 사고가 날까 봐, 이 역의 대피 선로에 잠시 서 있다가 마주 오던 기차가 지나가면 다시 출발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죠.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존재가 된 이 역이 ‘쓸쓸한 운명’이라는 말에 딱 맞는 듯했습니다.

폐역 덩굴 담장과 녹슨 대문의 첫인상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사의 담장에는 덩굴식물이 무성하게 벽을 타고 붙어 있어 마치 폐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요. 역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입구를 막은 대문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녹슬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워지는 날씨에 부는 바람 속에서 이 역 앞에 혼자 서 있으니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폐가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녹슨 철문 앞에서 폐역된 동방역 간판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역 뒤로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나란히 보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역시 폐역 대부분의 경우 구시대와 현시대가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꼈습니다.

폐역 덩굴 담장과 녹슨 대문의 첫인상

출처: 동방역뒤로 보이는 아파트-직접 촬영

레트로 감성 길거리와 동방역의 기록

동방역 주변을 걸으며 만난 풍경들은 단순히 폐역의 쓸쓸함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왠지 모르게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레트로 감성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쓸쓸히 도로 옆 길거리에 놓인 화분들에 작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기차가 멈춘 지 오래되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버려진 듯한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지나간 시간들과 현재의 시간에 생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녹슨 철문과 낡은 벽돌 건물과 적막함

역 입구 왼쪽에는 낡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된 벽돌 건물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무언가 운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곡식을 빻는 방앗간 같았는데, 족히 5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옛 모습과 먼지가 빼곡히 쌓인 담벼락과 건물 안 복도, 각종 물건들이 보였는데 옛날에는 이 동방역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기차를 타기 전후로 이곳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각 지역의 폐역은 양식이나 지은 연대는 비슷할지 모르나 해당 역사에 위치한 마을마다 고유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오래된 건물의 모습과 벽화, 옛날 어릴 적에 보던 판자집 같은 건물, 어릴 적 당시 살던 근대 상가 주택과 벗겨진 페인트, 녹슨 철문 등 모든 것이 이 동네만의, 자동차 도로 옆 사람 없는 적막한 건물 사이에 보이는 레트로 감성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녹슨 철문과 낡은 벽돌 건물과 적막함

출처: 오래된 벽돌과 덩쿨 앞에서-직접 촬영

방앗간의 기계 소리와 존재하지 않는 상권

폐역 주변을 걸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80년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미닫이 유리창 입구 문들이었는데, 그 옆에는 아이러니하게 신라 시대에 지어진 듯한 기왓장 입구 건물도 함께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벽면에는 현시대에 맞춰 그려져 있는 신라 왕관과 구름을 모티브로 한 페인트 벽화가 모든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오래된 양식의 건물에서는 알루미늄 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왠지 모르게 주변의 스산함이 더해져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길거리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듯한 외국인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고, 도로에는 자동차만 쌩쌩 달리고 있었는데요. 폐역 동방역 맞은편 버스 승강장 뒤로는 초등학교가 보였지만, 부모나 아이들 어느 누구 하나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시골일수록 확실히 인구가 감소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곳은 버스로 오기는 힘든 곳인 것 같고, 개인 차량으로 와봐야 하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라 왕관과 구름을 모티브로 한 페인트 벽화

출처: 동방역앞 신라왕관 페이트벽화-직접 촬영

가족 여행은 비추천, 동방역의 느낌

이번 여행은 레트로 감성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 이전에 지나쳐 버리고 온 폐역사와 아이들에게 PPT로 만들어서 설명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찾아와 본 것이라 혼자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가족 여행이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역 앞과 주변에는 음식점이나 상권이 전혀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은 오래된 건물의 폐역과 벽화가 그려진 길거리 말고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을 테니, 아이들과 이곳을 탐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는 것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다음부터 폐역과 신역을 가족들과 여행하며 역사적인 흔적과 현시대적 이용 가치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때는, 폐역은 그 역사적 역할과 주변 환경을 더 잘 알아보고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동방역은 이처럼 이용객이 적었고 주로 화물이나 신호장 역할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래서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역사적 교육에 도움 될 만한 신역과 구역, 그리고 주변 맛집과 변화되는 근대사의 조화가 잘 된 곳을 찾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