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주말 강구역 기차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복잡한 관광 대신 ‘기차 타기’ 자체에 중점을 둔 간결한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워낙 딸이 기차 타는 것을 좋아했고,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순히 기차의 낯선 풍경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리로를 타고 강구역에 내려 주변 시골 풍경과 시장을 둘러보고,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잡았습니다. 강구항이나 삼사해상공원 같은 곳은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무리였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했을 때, 대게나 해산물 구경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딸에게 물어보니 “아빠, 그냥 시장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이전 영해 만세시장 구경에서도 아이들은 오로지 먹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기차 타는 즐거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ITX-마음이 강구역에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누리로 시간표를 확인해야 했고, 강구역에 13:59분에 도착해, 17:00에 출발하는 누리로를 타면 약 3시간의 여유가 생깁니다. 이 시간이라면 강구 시장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돌아오기에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출처: 딸아이와 강구역 앞에서-직접 촬영
강구역 썰렁함 속의 아기자기한 모습
누리로가 안내한 특별한 기차 여행
예상대로 강구역에 도착하니 첫 느낌은 너무나 썰렁했습니다. 누리로만 정차하는 역의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시설은 아주 단출했지만, 어딘가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는데, 역사도 작았지만 주변은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조용한 바람 소리와 시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풍경이 보였습니다.
역 주변에는 삼사해상공원, 영덕어촌민속전시관 등 볼거리가 있었지만, 택시나 버스로 이동해야 했고, 딸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저희는 복잡한 관광 대신 ‘기차 타기’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고, 실제로 와보니 오직 기차여행에만 집중하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강구역에 정차하는 기차가 누리로 외에는 없었고,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몇 번 정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타고 온 13:59 열차와 돌아갈 17:00 열차 사이의 시간은 강구역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시간표처럼 느껴졌습니다. 낯선 곳에서 딸아와 느끼는 짧은 여유와 주변 시골 마을 소리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았습니다.
카페 같은 대기실과 강구역의 이야기

출처: 카페 같은 대기실 내부-직접 촬영
역사 나가는 곳으로 나오니 역사 대기실이 무슨 카페인 양 꾸며져 있었습니다. 은은한 향기와 아기자기한 화분, 일반 카페 같은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갤러리까지 갖추고 있었죠. 딸과 저는 순간 여기가 기차역사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따뜻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블라인드와 조화롭게 놓인 푸른 식물들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혹시 지나가는 길이라도 있다면 역사에 들러 대기실을 꼭 보기를 추천합니다.
대기실 한 벽면에는 ‘구불거리는 강물을 닮은 역사’라는 제목의 강구역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강구역은 오십천 계곡의 맑은 물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강구항’을 상징하여 구불거리는 강의 물길을 형상화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곳이 전국 최대의 대게 집산지이며, 1997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 배경이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머리에 스치듯 군대 휴게실에서 모두 모두 TV를 시청했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군대에 있었고,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었던 추억이 생생했습니다.
벽면에 비닐 안에 넣어져 장식된 먹는 약 봉지, 아이폰, 통장 등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있었는데, 무엇을 위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화분들과 집에서나 쓸 법한 스탠드 조명, 그리고 따뜻한 조명이 더해진 책장까지 어우러져 독특한 감성을 자아냈습니다.
딸아이가 재미있어 하며 방명록에 무엇인가 글을 남겼습니다. 딸은 아빠와 함께 기차를 탄 것이 즐거웠다는 내용을 귀여운 글씨로 적었고, 그 옆에 저도 짧게 소감을 남기며 이 특별한 강구역에서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설렘을 안고 역사 밖으로 나왔습니다.

출처: 딸아이의 강구역 방문록 작성-직접 촬영
역 밖의 게 열차와 바람의 속삭임
딸아이와 방명록을 남기고 드디어 역사 밖으로 나왔습니다. 강구역 입구는 다른 역에 비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연상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출구 왼쪽 벽면에는 파란색 계열의 다양한 색상으로 바다의 물결이 표현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바람의 속삭임’이라는 문구와 함께 바람개비 20여 개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 바람개비들은 파란색과 흰색, 민트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강구라는 곳에 대한 아름다운 바닷가를 연상하게 해주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바람개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말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역동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역사 정면에는 더욱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덕 대게의 모습을 형상화한 미니 기차였습니다. 정면에는 귀여운 게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객차 부분은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어 아이들의 포토존으로 완벽했습니다. 딸아이도 이 귀여운 게 열차 앞에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고, 저도 옆에서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강구역은 단순히 기차가 정차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안팎으로 이곳의 문화와 상징(대게), 바닷가 감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노력들 덕분에 딸아이의 기차여행이 더욱 특별해진 것 같았습니다.

출처: 강구역 앞 대게모습 미니 기차-직접 촬영
시골길을 따라 걸은 짧은 산책과 식사
멈춘 듯 고요한 강구 시장
역 밖으로 나오니 블루로드 노선의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 승강장이 보였습니다. 버스 운행 시간표가 벽면에 깔끔하게 붙어 있어 출발지와 행선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버스를 탈 계획이 없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다른 여행자들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것 같았습니다.
조금 걸으니 금방 강구시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이 강구시장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였죠. 지나가는 행인 몇 분을 빼면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장날(3일, 8일)이 아니라서 그런 듯 보였습니다.
주변 상가에는 물회 식당, 반찬집, 건어물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지만, 조용했습니다. 특히 영덕의 명물인 대게를 파는 식당들도 문을 열었고 호객 행위를 하는 분들도 보였지만, 시장 전체의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활기 넘치는 시장의 모습을 기대했던 터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썰렁한 시장 풍경과 조용한 골목의 레트로한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기차여행을 하면서 시장 구경과 먹거리를 기대하신다면, 강구를 방문할 때 장날을 꼭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멈춘 듯 고요한 강구 시장-직접 촬영
딸아이의 입맛에 맞는 시골 짜장면 점심
딸아이에게 강구항과 대게 거리 쪽으로 가보자고 하였지만,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여기서 밥을 먹자고 재촉했습니다. 주변을 찾아보니 국밥집이나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한식당, 물회집들밖에 없어서 딸아이에게 국밥을 먹자고 하니 고개를 젓더군요. 얼마 전 영해에서 먹었던 시골 국밥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아이가 좋아할 만한 짜장면집을 검색해 아이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짜장면집에 들어가니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짜장면을 주문했고, 저는 짬뽕을 시켰습니다. 쫄깃한 면발에 진한 짜장 소스가 묻어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딸아이는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이 맛있었는지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고, 따뜻한 짜장면을 먹고 나니 썰렁했던 시장 구경으로 차가워졌던 몸이 다시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벌써 시간이 3시 40분 가까이 되어 기차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았습니다.

출처: 강구 시골 짜장면 점심-직접 촬영
시골 초등학교에서의 짧은 행복
도시 못지않은 강구초등학교의 풍경
남은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바다를 보러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차라리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를 보러 가자고 하니 딸아이가 좋아했습니다.
강구초등학교에 도착하니 학교가 세련되었고 도시 못지않게 조경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 학교가 자기 학교보다 좋은 것 같아”라고 말하더군요. 마을 분위기와 다르게 학교 건물은 깔끔했고 운동장도 넓었습니다. 학교 옥상에는 태양열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조량이 얼마나 잘 들어오면 초등학교에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놀이와 집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딸아이는 신나게 달리기도 하고, 그네도 탔고, 학교 주변을 둘러보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아이들 눈에는 낯선 곳의 학교 운동장 자체가 새로운 놀이터가 된 듯했죠.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벌써 4시 30여 분을 향해 가서 우리는 다시 강구역사로 이동했습니다.
강구역사에 도착해서 카페 분위기 같은 향기 좋은 대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되어 다시 기차에 몸을 싣고 딸아이와 집으로 향했는데, 저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짧은 기차여행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들만의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았죠.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며 아이와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창가 옆 풍경을 보면서 오늘 하루 강구 기차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와 함께 역사 공부도 되는 기차여행을 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해봅니다.

출처: 강구역 누리로 열차 기다림-직접 촬영
강구역 기차여행을 위한 안내
1️⃣ 누리로 시간표 확인: 강구역에는 ITX-마음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누리로만 운행합니다. 특히 당일치기 여행 시에는 도착 및 출발 열차가 하루에 몇 편 없으므로, 코레일 공식 사이트에서 최신 시간표를 확인하고 일정을 짜야 합니다. (저희처럼 3시간 내외의 짧은 여유만 가질 수 있습니다.)
2️⃣ 역사 대기실 활용: 강구역 대기실은 일반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향기가 좋습니다. 기차를 기다리거나 잠시 쉬어갈 때 외부 카페 대신 이 공간을 활용하며 여유를 즐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3️⃣ 강구시장은 장날 방문 추천: 강구전통시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열리는 오일장입니다. 장날이 아닌 평일이나 주말에 방문하면 저희처럼 매우 썰렁하고 유동 인구가 적어 활기찬 시장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북적이는 시장 구경을 원한다면 장날에 맞춰 방문하는 것을 좋습니다.
4️⃣ 식사 메뉴 선택: 강구시장의 식당가는 물회, 국밥 등 어른들이 선호하는 한식이나 회 식당이 주를 이룹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식이나 패스트푸드점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이들과 동행할 경우, 미리 간식을 준비하거나, 분식점/짜장면집 등을 사전에 검색하고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5️⃣ 강구초등학교: 만약 시간이 애매하게 남거나 아이들이 지쳐한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강구초등학교 운동장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장의 조경이 잘 되어 있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기 좋은 공간입니다.